중국 자동차 산업의 폭풍 성장 비밀
중국 자동차 산업의 비밀 6가지
중국 정부는 테슬라의 중국 진출을 허용하면서 시장의 일부를 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테슬라의 선진기술을 배우는 전략을 취하면서 전기차·스마트카 비약적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선진 기술의 도입에 의해 시장이 빠르고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얻으면서 중국 현지 기업들이 함께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지혜)
IT 출신의 창업가들이 자동차 스타트업 설립 도전의 환경이 조성되며 전기차 등의 개발 분위기가 조성됨(비 자동차 전문가의 창업 문화)
고급 엔지니어들이 직장을 계속 옮기는 환경이 조성되어 중국의 자동차 기업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는 효과가 있음(기업간 스카웃이 허용되는 문화)
연간 3000만대 이상의 차량을 만드는 규모의 경제 속에서 알리바바·화웨이·샤오미·텐센트 등 IT기업 뛰어들어 화웨이, 등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고 자동차 디지털화에 기여하고 있음(큰 시장과 IT기업의 참여)
생성형 AI 등 새로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서도 압도적인 절대 시간을 투입하여 일하는 엔지니어 문화(일몰입을 촉진하고 신기술 활용하는 전술)
BYD 사례와 같이 배터리로 시작한 사업의 생존을 위해 부품과 완성차까지 제조하는 무모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중국의 기업가 정신((무모할 정도의 도전적 기업가 정신)
朴正圭
1968년생.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석사, 일본 교토대 정밀공학과 박사, 미국 미시간대 방문학자 / 기아자동차 중앙기술연구소 연구원, 日 교토대 정밀공학과 조교수, LG전자 생산기술원,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해외공장지원실 근무,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겸임교수 역임 / 번역서 《반도체초진화론》 《실천 모듈러 설계》 《모노즈쿠리》
2024년 8월 30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 ‘청두모터쇼 2024’에서 관람객들이 BYD Seal 06GT 전기차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뉴시스
2025년이다. 10년 전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라는 산업정책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제조 강국에 진입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그해가 왔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백악관에 돌아왔다. 한마디로 2025년은 ‘위대한 미국(MAGA)’과 ‘중국제조 2025’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징적인 해이다.
이미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봉쇄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제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중국의 굴기(崛起)는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다. 2024년 3분기 자동차 판매량 기준으로 중국의 BYD가 글로벌 6위, 지리(Geely)가 9위를 차지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은 2024년에 730만 대의 차량을 판매해 글로벌 3위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미 2015년에 더 많은 801만 대의 차량을 판매했고, 당시 글로벌 5위였다. 즉 10년간 자동차 산업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판매 대수는 70만 대나 줄었지만, 순위는 5위에서 3위로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100만 대, 200만 대 규모의 자동차 메이커가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이미 배터리 회사(BYD), 냉장고 부품사(지리), 휴대폰 회사(화웨이, 샤오미)가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면서 자동차 산업 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도대체 중국 기업은 어떤 장점이 있기에 이렇게 다양한 회사가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여 성공하고 있단 말인가?
중국 제조업의 특징과 중국 자동차 산업의 장점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그리고 이와 경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디지털 대국 중국
필자는 2011년부터 베이징(北京)현대자동차의 생산 시스템 최적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3년에 걸쳐 매년 3~4개월가량씩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주요 공업 도시를 방문 조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식사를 할 때 현금만 있으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23년, 약 10년 만에 재방문한 중국은 전혀 달랐다. 과거와 달리 식사나 택시 이용 시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를 요구해서 필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의 경제지 《주간 동양경제》는 2020년 10월 21일호에서 〈디지털 대국 중국〉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디지털화’를 현대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제시했다.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온라인 결제 이용률은 당시 이미 전체 결제의 85.7%에 달했다.
이런 디지털화는 중국 제조업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디지털화가 제조업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CD-ROM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만들 때는 동일한 치수로 만들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기계공학에서 이것을 공차(허용오차)라고 한다. 설계도면에 가령 20±0.1이라고 적혀 있으면 실제 제품은 20mm를 기준으로 19.9~20.1mm까지의 길이를 허용하고, 이 범위를 넘어가면 불량이다(그림 1a 참조). CD-ROM과 같은 정밀기기에서는 이 허용오차가 무척 작다. 원래 CD-ROM은 1980년대 중반 소니와 필립스가 처음 개발한 제품이다. 초창기 CD-ROM의 조립 과정을 〈그림 1c〉에 표시했다. 작업자가 부품 한 개씩 허용된 오차 범위(tolerance) 내에 들어가는지 확인하면서 정밀하게 조립해 완성품을 만든다. 숙련이 요구되는 작업으로, 엄격한 품질 관리 능력을 가진 일본이 이 산업을 주도했다.
그림 1 일일이 사람이 하던 정밀한 조립 작업에서의 조정을 디지털 제어 방식인 MPU를 사용하여 조립 공차가 커도 또 조립을 비숙련공이 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공법을 바꾸면서 제조 원가가 대폭 낮춰지는 효과를 나았다. |
제조업 판도를 바꾼 디지털화
1997년 설립된 대만 기업 미디어텍(MediaTek)이 CD-ROM의 제조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어 버린다. 미디어텍은 MPU(마이크로 프로세스 유닛)라는 반도체 칩(chip)에 CD-ROM에 들어가는 여러 부품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내장(內藏)해 공급했다. 참고로 MPU에 내장된 기본 소프트웨어를 펌웨어(firmware)라고 한다. 디지털화된 전자기기를 이용해 부품의 위치를 측정(센싱)하고, 만약 제 위치가 아니면 제어(control)해서 수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허용 공차가 커지면서,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결국 비숙련공이 CD-ROM을 조립해도 큰 문제가 없고, CD-ROM 메이커는 부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외부 업체에 맡겨 코스트를 낮췄다(그림 1d). 학술 용어로 표현하면, ‘수직계열화’된 산업이 ‘수평분업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해 CD-ROM 시장을 장악했고, 일본 기업은 몰락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CD-ROM뿐만 아니라 DVD, HD-DVD와 같은 광학(光學)기기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어렵게 기술 개발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후지쓰에 근무한 공학박사 오가와 고이치(小川紘一)는 이에 의문을 가지고 정년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해, 디지털화가 만들어 내는 제품 변화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CD-ROM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①반도체 칩(여기서는 MPU), ②소프트웨어(여기서는 펌웨어), ③수평분업화는 중국이 CD-ROM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지면 상의 한계로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필자는 중국 전기차의 굴기도 CD-ROM의 사례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 살펴보자.
중국 기업의 테슬라 따라 하기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인 기계 산업이자 아날로그 산업이었다. 내연기관(內燃機關·Internal Combustion Engine)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엔진은 실린더라는 한정된 공간에 연료와 공기를 적절한 비율로 주입하고 연소(燃燒)시켜 발생하는 폭발력으로 자동차 바퀴를 돌린다. 물론 연비(燃比)를 향상시키기 위해 연료를 분사하는 양, 점화하는 시기 등을 반도체 칩을 사용해 정밀하게 제어하지만, 엔진이 갖는 복잡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경험과 암묵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장치다. 그래서 자동차 역사가 짧은 나라일수록 엔진 개발에 애를 먹는다. 한국이 그랬고, 중국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자국(自國) 시장을 외국 기업에게 내주면서 기술을 배우는 정책을 펼쳤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 간에 50 대 50의 자본 비율로 합작사를 만들게 했다. 토요타는 제일기차, 폴크스바겐(VW)은 상하이기차와 합작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좀처럼 중국 기업의 실력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테슬라라는 회사가 나타났다. 이 회사는 내연기관 엔진이 없는 전기차를 만들고, 스마트폰과 같이 자동차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서 자율주행 수준을 계속 향상시킨다. 즉, 테슬라 차량은 ‘전기차이자 스마트카’라는 개념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모터의 움직임은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될 정도로 명시적이다. 즉, 엔진이 암묵지(暗默智)가 요구되는 아날로그 제품이라면, 모터는 명시적 지식으로 충분한 디지털 제품이다.
‘스마트한 전기차(SEV·Smart Electric Vehicle)’를 들고 나와 히트시킨 테슬라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테슬라의 기술 진보와 중국 자동차 산업의 도전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중국 자동차 메이커가 무모할 정도로 테슬라 따라 하기에 올인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SDV
테슬라는 2008년 로드스터(Roadster)라는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에 신에너지차(NEV·New Energy Vehicle)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면서 전기차에 정책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NEV는 EV(전기차),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FCEV(연료전지자동차)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는 했지만, 실제 판매가 극적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0.53만 대(2009년)→0.7만 대(10년)→0.8만 대(11년)].
2013년 테슬라가 운전자 보조 장치(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인 오토파일럿(Autopilot)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2014년에 차량에 장착한다. 여기서 ADAS는 차선 이탈 경고와 같이 운전자를 보조하면서 반(半)자율주행을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테슬라 차량은 컴퓨터처럼 차량에 고성능 반도체 칩을 탑재하고 필요로 하는 기능을 소프트웨어(SW)로 구현하면서 무선(無線)으로 SW를 업데이트하는 차량으로 진화했다. 즉 테슬라는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을 만들었다(《월간조선》 2024년 8월호, 〈소프트웨어가 삼켜버린 자동차, SDV〉 참조).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직감한 중국 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2014년 알리바바라는 IT 기업과 상하이기차가 합작해 ‘인터넷 자동차(Internet of Vehicl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가면서 테슬라와 같은 ‘스마트 차량’ 개발에 도전한다. 전통 자동차 메이커와 IT 기업 간의 분업화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당시 상하이기차의 정보 시스템 책임자인 장신취안(張新權)은 차량 개발 컨퍼런스에서 “이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의 시대에 들어갔으며 고객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연설했다. 즉, 중국은 2014년부터 SDV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테슬라 기술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IT 기업들
2012년 당시 베이징현대자동차 공장의 모습. 중국 전기차의 성장과 함께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밀려났다. 사진=조선DB |
그리고 2016년에 로위(ROEWE) RX5라는 차량을 출시한다. 로위는 비록 내연기관을 동력원으로 하는 차량이기는 하지만 알리바바가 만든 Yun OS를 탑재하여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Over-The-Air)가 가능하며 음성인식,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화웨이, 텐센트와 같은 중국 IT 기업이 자동차 메이커와 합종연횡(合縱連橫)하는 형태로 자동차 관련 비즈니스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전기차 3인방’ 니오(NIO)와 샤오펑(Xpeng)이 2014년에, 리오토(Li Auto)가 2015년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모두 IT 관련 기업에 종사하다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차량이 전기차로 디지털화되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스마트화가 이루어지자, NEV 판매가 점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9만 대(15년)→19만 대(16년)→38만 대(17년)]. 2016년 한국 정부가 국가 방위를 위해 사드(THAAD) 미사일을 배치하자, 중국 정부가 반발하고 중국 내 반한(反韓) 정서가 일어나면서 현대차의 점유율이 떨어진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중국은 테슬라를 새로운 롤 모델로 삼았기에 사드를 핑계로 그전까지 롤 모델이었던 현대차를 버렸을 수 있다.
이후 중국 정부는 테슬라가 중국 내에 공장을 짓도록 유치 작업을 펼친다. 중국 정부는 테슬라에게 100% 단독 출자해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특혜를 준다. 상하이 자유무역구(Free Trade Zone)에 부지도 제공한다. 테슬라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19년 1월에 공장 건설을 시작, 2020년 1월에 첫 차를 인도한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중국 현지 부품사를 새로 육성하면서 중국 전기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중국 자본의 전기차 메이커를 자극했다. 경영학에 ‘메기 효과(catfish effect)’라는 것이 있다. 한정된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를 활용하여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메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결국 테슬라의 상하이공장이 기폭제가 되어 NEV 판매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112만 대(19년)→118만 대(20년)→312만 대(21년)→598만 대(22년)].
엔지니어들의 잦은 이직으로 기술 상향평준화
중국 자동차 산업은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한국과 많이 다르다. 먼저 차량 개발 측면에서 살펴보자. 최근 샤오미가 SU7이라는 차량을 출시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당시 많은 언론은 샤오미라는 IT 기업이 최고 수준의 차를 단기간에 개발하고 공장까지 운영한다는 데 놀랐다. 그래서 한국 미디어는 샤오미가 직접 공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베이징기차에 위탁생산한다는 오보(誤報)를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수평분업화되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샤오미의 기술 개발 책임자인 후자오난(胡昭楠)의 이력을 살펴보자. 그는 1975년생으로 난징항공항천대학(南京航空航天大學)을 졸업하고 1997년부터 상하이기차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00년에 자동차 설계 회사인 상하이룽촹(Shanghai Longchuang)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BYD의 F3 같은 중국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는 차량의 개발 업무에 참여했다. 2012년 지리자동차로 스카우트되어 2016년 연구소장으로 승진한 그는 지리의 독자적인 차량 플랫폼 SEA(Sustainable Experience Architecture)를 개발해 중국 자동차 산업의 핵심인물로 성장한다. 그리고 2021년 6월 샤오미로 회사를 옮겨 SU7 차량 개발에 참여한다.
후자오난의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의 자동차 엔지니어는 여러 회사를 많이 옮겨 다닌다. 그래서 기술의 상향평준화가 빠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고급 기술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에는 몇 년간 한 회사에 근무하다가 타사(他社)로 이직하면서 연봉을 올려 나가는 문화가 있기에, 각 회사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회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노하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가 중요한 키포인트가 된다.
필자는 작년 8월 나고야대학 전기공학과의 야마모토 마사요시(山本眞義) 교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중국 전기차를 분해 분석한 사람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를 분해해 보면 회사가 다르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비슷하게 설계해 놓은 곳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 엔지니어의 회사 이동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의 BYD는 한때 휴대폰용 배터리를 위탁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경쟁사인 폭스콘(Foxconn)의 모든 직급의 직원을 뽑아오는 전략을 펼친 적이 있다. 이런 전략 덕분에 BYD는 휴대폰 배터리 시장 진입 2년 만에 노키아와 모토롤라 같은 글로벌 고객으로부터 수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행위는 스파이 활동이라고도 볼 수도, ‘고용을 통한 학습(learning by hiring)’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찌됐든 BYD는 목표 달성을 위해 악착같이 행동하는 기업임에는 틀림없다(콜롬비아대 비즈니스스쿨, 케이스 스터디, 2009, 〈Foxconn vs BYD: 스파이 행위인가 고용을 통한 학습인가?〉).
‘셀 생산 방식’ 혁신 공장
생산 측면에서는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AE Corp(Automotive Engineering Corporation)’라는 회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자동차 공장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다. 완성차 메이커의 의뢰를 받아 고객의 요청 사항에 맞는 자동차 공장을 만들어준다.
필자는 2023년 말에 AE Corp를 방문해서 그곳에서 설계한 여러 공장에 대한 브리핑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개받은 내용 중 흥미로웠던 것은 ‘상하이-GM-우링(SGMW)’이라는 자동차 메이커의 셀(Cell) 생산 방식의 공장이었다. 셀 생산 방식이란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소수의 작업자가 소규모 작업장(셀)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생산 방식이다. 현대차가 싱가포르에 만든 혁신 공장도 바로 셀 생산 방식이며, 토요타의 ‘GR야리스팩토리’라는 연산 3만 대 정도의 공장도 셀 생산 방식이다. 즉 한중일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셀 생산 방식으로 운영되는 혁신 공장을 선보였다. 단, 각 회사별로 공장에 대한 철학이 달라 그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동차의 IT화 측면에서 수평분업화의 일익(一翼)을 담당하는 곳이 화웨이(華爲·Huawei)다. 화웨이는 자동차가 스마트카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 스마트카에 관련된 에코시스템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인 것 같다. 화웨이의 사업 모델은 크게 세 가지다. 화웨이는 ①스마트카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1차 부품사 역할을 한다. ②‘화웨이 인사이드(HI·Huawei Inside)’라는, 스마트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솔류션을 완성차 메이커에 제공한다. ③직접 자동차 개발팀을 완성차 메이커에 보내 차량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화웨이는 이런 사업 모델을 HIMA(Harmony Intelligent Mobility Alliance)라고 하는데, 다른 자동차 메이커와 합작 브랜드를 만들어서 마치 과외선생처럼 자동차의 디지털화에 뒤처진 회사들을 끌어가고 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중국이란 단일 국가에서 연간 300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기에 중국 자동차 산업은 한국과 무척 다르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간이 침대 놓고 일하는 SW 개발자들
〈그림2〉 중국 자동차 메이커의 월평균 잔업 시간 비교 |
이상에서 최근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를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면, 이제 기업 내부를 살펴보자. 스마트한 자동차 개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 중국의 자동차 기업은 상당히 무리를 해가면서 차량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림 2〉는 중국 자동차 메이커의 한 달 평균 잔업 시간을 나타낸 표다. 이 데이터를 보면 IT에 기반을 두었다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전기차 신흥 기업인 니오, 리오토, 샤오펑의 잔업 시간은 한 달에 70~100시간에 달한다. 외국 합자사와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근무 시간이 많다. 이것은 비단 자동차 회사뿐만이 아니다.
필자는 일본 자동차 전문가들의 연구 모임에 월 1회 참가하고 있다. 그곳에서 텐센트라는 IT 기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일하는 사무실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책상 바로 옆에는 간이 접이식 침대가 있고 먹을거리도 있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인해전술(人海戰術) 바로 그 자체였다. 왜 이렇게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초조해 하는가? 일반적으로 중국 정부가 자동차 기업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기업의 생존을 위한 경쟁 강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 같다.
모델별 손익분기점, 10만 대로 떨어져
작금의 중국의 자동차 개발 속도는 초(超)스피드라는 말로도 부족하기에 폭속개발(爆速開發)이라고 부른다.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스피드와 파괴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령 현재 중국 자동차 메이커는 2020년부터 차량을 개발하는 기간(풀모델 체인지 기준)을 종래 2년에서 이미 1년 6개월로 단축시키는 작업을 했다. 중국 기업은 자동차가 디지털화되면서 개발 완성도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빨리 도입해서 시장에 내놓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024년 11월 일본 닛산은 실적이 부진하여 9000명의 인력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재 50~60개월 걸리는 차량 개발 기간을 30개월로 줄이겠다고 했다. 중국 기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결국 경쟁 구도 속에서 도태(淘汰)되는 기업은 도태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국 기업은 ‘폭속개발’을 위해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소위 엔지니어를 ‘갈아 넣고’ 있다. 한편 과감하게 신규 기술을 도입하는 방식 또한 병행한다. 대표적인 것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차의 초기 콘셉트 단계에서의 디자인 기간 단축이다.
과거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일은 사람의 경험과 능력에 많이 좌우됐다. 그래서 디자인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디자이너를 채용했고, 또 각자 만들어 낸 디자인안(案)을 서로 경쟁시켜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디자인안을 채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디자이너에게 상당한 수준의 숙련도를 요구하며 기간도 길다.
하지만 지금은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소수의 디자이너가 짧은 기간 내에 다수의 디자인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잠재 고객에 적합한 디자인을 끌어낼 수도 있다. 결국 생성형 AI에 의해 디자이너는 디자인 숙련도보다 고객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되며, 또 AI를 통해 디자인안을 더 잘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차량의 디지털화 및 이와 같은 혁신으로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모델당 생산 대수도 줄어들고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에 정통한 일본 전문가의 논문에 의하면 현재 잘나가는 중국 자동차 기업의 모델당 손익분기점이 10만 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外交》 Vol.87, Sep/Oct 2024).
직접 반도체 칩 설계하는 중국 자동차 메이커
중국은 테슬라를 모델로 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변혁을 ‘전동화’와 ‘스마트화’라는 2가지 큰 발전 방향으로 잡았다. 이 중 전동화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배터리라면, 스마트화의 핵심 부품은 반도체 칩이다. 배터리가 자동차의 심장이라면 반도체 칩은 머리이고, 디지털 기술의 기반에 해당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반도체 칩 위에서 생물체처럼 뛰어노는 존재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또 성장해 나가는 존재다.
내연기관인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며 부품이 적어지고 단순해졌다. 반면 부품에 불과한 반도체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集積)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칩의 연구 개발은 매우 복잡하고 관련 범위가 넓으며, 전문적인 인재가 필요하고 개발 주기(週期)도 길다. 업계에서는 28나노 칩의 개발비는 5130만 달러이며, 16나노 칩은 1억 달러로 높아지며, 7나노 칩은 2억 9700만 달러, 5나노는 5억 4000만 달러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연구기관 Semi Engineering 추산).
자동차 메이커는 제품이 거시적(자동차)으로는 심플해지는데 미시적(반도체)으로는 복잡해지는 이율배반적인 형국에 직면했다. 완성차 메이커는 이런 반도체를 직접 설계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구입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의 신흥 전기차 메이커인 니오는 테슬라처럼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2024년 7월에 자사가 직접 설계한 5나노 공정이 적용된 스마트 드라이빙 칩(NX9031)을 공개했고, 2025년 자사 차량에 탑재할 것이라고 한다. 창업 이후 계속 적자만 낸 경력의 자동차 회사가 이루어 낸 성과라 우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어찌됐든 이것이 한국 메이커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실패 무릅쓴 도전정신 사라진 한국 자동차 산업
중국 자동차 산업은 외국 차량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만드는 BYD가 배터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싶어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만들었다. BYD가 PHEV라는 동력원의 차를 처음 만들었기에 관련 부품을 만들어줄 곳이 없었다. 그래서 BYD는 직접 부품까지 개발해야 했다.
지금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이 BYD는 부품까지 다 만들어서 차량에 공급하는 것이 강점이고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사실은 순서가 반대다. 하다 보니 부품까지 만들었고, 부품까지 만들다 보니 나름 장점이 있어 계속 확대한 것뿐이다.
그리고 테슬라라는 회사가 나타나자, 화웨이와 샤오미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 중국 정부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지원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맞춰 도전하는 기업이 있었고, 또 파산하는 기업도 많았다. 한때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시도하다가 좌절된 기억이 주술(呪術)처럼 작용해 자동차 산업의 다이나믹스가 사라진 한국과 대조된다.
지금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EV) 판매가 증가하고 특히 최근에는 PHEV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일본·미국은 전기차 판매는 주춤하고 하이브리드(HEV) 차량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월드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하나의 차종을 전 세계에 팔겠다는 전략을 말한다. 지금은 반대로 지역별로 선호하는 동력원이 다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중국 기업이 전기차 판매에 주력해 왔지만, 소리소문 없이 엔진 기술을 개발해 전기차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EREV(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주행거리연장형 자동차)가 바로 그것이다.
의사 결정 빨라지는 일본, 늦어지는 한국
지금 자동차 산업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스탠리(Kenneth Stanley)와 레먼(Joel Lehman)의 《왜 위대한 것은 계획되지 않는가(Why Greatness Cannot Be Planned)》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들은 “목표를 너무 구체적으로 잡을 경우,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탐험과 시도를 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지금 독일 자동차 메이커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독일 기업들은 재생 에너지의 미래를 너무 긍정적으로 보고, 그에 맞춰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너무 구체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이 계획이 무산되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변혁기에 자동차 기업의 경영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보해야 할 기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단기적인 전략의 유연성 또한 필요하다. 즉 어제 내린 결정을 오늘 변경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 중국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빠르지만, 변화의 본질을 꿰뚫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한국 기업에 필요하다. 작년 어느 모임에서 한국 자동차 메이커에 부품을 납품하는 일본인 기술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과거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의사 결정이 느렸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기업은 과거 대비 점점 의사 결정이 느려지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의사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업의 다이나믹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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